확 휘며 뚝 떨어져 뻔히 보면서 못친다
확 휘며 뚝 떨어져 뻔히 보면서 못친다
‘느린데 휘고 뚝 떨어지고….’
팔꿈치 부상에서 돌아온 류현진(36·토론토 블루제이스)이 갈고 닦은 비기(秘器) 커브를 앞세워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왼쪽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류현진은 이후 무려 14개월의 긴 재활을 거쳐 빅리그에 돌아왔고,
29일(한국시간) 현재 3승 1패, 평균자책점은 2.25의 빼어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류현진의 호투 비결로는 지난해보다 훨씬 강력해진 커브가 꼽힌다.
커브는 공의 실밥 위에 검지와 중지를 붙여 잡고, 던지면서 손목을 비트는 구종이다.
커브의 궤적은 타자 머리 높이를 향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홈플레이트 앞에서 무릎 아래쪽으로 뚝 떨어진다.
가장 기본적인 이 구종이 올해 류현진의 가장 확실한 무기가 됐다.
팔꿈치를 다치기 전 풀타임시즌이었던 2021년 커브의 비중은 전체 피칭의 12.6%였지만, 올핸 18.6%까지 늘어났다.
이는 직구(30.2%), 체인지업(25.3%)에 이어 3번째 비중.
지난해에도 커브 비중은 21.0%로 높았지만, 당시엔 팔꿈치 부상에 따른 임시적 조치였다.
비중은 늘었는데 의외로 구속은 급격히 줄었다.
미국 야구 통계사이트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올해 커브의 평균 구속은 시속 69.6마일(112㎞)에 그쳤다.
다치기 전 2021시즌 평균 구속 73.9마일(118.9㎞)보다 4.3마일(6.9㎞)이나 느리다.
가장 최근 등판이었던 클리블랜드전에선 커브 최저 구속이 시속 64.6마일(104㎞)까지 떨어졌다.
메이저리그 투구 분석 전문가인 롭 프리드먼은 “올 시즌 선발 투수가 헛스윙을 유도한 공 중 가장 느리다.
투수 구속은 대체로 ‘얼마나 빠른지’ 확인하지만, 류현진은 ‘얼마나 느린지’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느린 공은 타자들에게 쉽게 공략당한다는 게 상식. 그런데 류현진 커브의 피안타율은 0.182밖에 되지 않는다.
느리지만 더 크게 휘고 낙차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류현진이 건강했던 시즌과 비교하면 커브의 낙폭과 휘는 궤적이 크게 달라졌다.
2021시즌엔 공을 놓는 지점(릴리스 포인트)에서 64.2인치(163㎝) 떨어지는 커브를 던졌다.
또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올랐던 2019시즌엔 낙폭이 66.1인치(167.9㎝)였다. 그러나 올해는 71.5인치(181.6㎝)로 더 크게 떨어진다.
이는 리그 평균보다 2인치(5.1㎝) 더 낙차가 크다. 볼의 수평 무브먼트(움직임)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2021년엔 던진 손에서 반대 방향으로 11.7인치(29.7㎝)였던 게 올해엔 13.5인치(34.3㎝)로 더 크게 휘고 있다.
수도권 한 구단의 데이터 전문가는 “전문 데이터를 볼 때, 류현진은 커브 마스터가 되어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귀띔했다.
올해 직구 평균 구속보다 시속 30㎞ 가까이 차이 나고, 크게 휘면서 아래로 떨어지는 낙차까지 갖춰 상대 타자들이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커브에 대한 상대 타자들의 헛스윙 비율은 2021년 13.3%에서 올해 36.1%로 상승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공이라도 제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이미 류현진의 제구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류현진의 투구 분포도를 살펴보면, 헛스윙을 유도하려고 일부러 낮게 던지는 것 외엔 모두 스트라이크존에 넣었다.
여기에 영리하게 볼 카운트 수 싸움을 하기에 그가 던진 공을 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송재우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은 “얼마 전까지 메이저리그에선 컷패스트볼 등 변형 직구가 크게 유행하면서 느린 변화구가 귀해졌다.
류현진이 이런 시대 흐름을 잘 읽고, 느린 커브를 결정구로 활용 중이다.
류현진은 정말 영리한 투수”라고 칭찬했다.